비와이는 왜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내려 입지 않고 언에듀는 왜 내려 입는가. 국힙에 대한 나의 생각, 비와이 본토(feat. son simba) 가사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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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_range 04/09/2022 00:00 infosort label사회/문화/경제
나는 어릴 때부터 힙합문화를 동경해왔다.
처음 제대로 좋아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비와이 The time goes on 이라는 노래를 듣고 난 이후인 것 같다. 비와이나 도끼의 노래를 들으면 무언가 가슴 뛰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며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고 그곳에서 내 가 간절하게 원하는 아주 큰 꿈을 품었다. 주변의 의심과 비판도 많았지만 난 개의치 않고 내 꿈을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녔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그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큰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의 가사를 보면 그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극복하고 주위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 결국 성공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가사를 들으면서 같은 걸 느낄 수 있었고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나는 음악은 잘 모르지만 우리는 사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 힙합문화를 알게 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수성가하여 그 것을 자랑 하는 문화를 동경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이것이 힙합만이 소유한 문화는 아닐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는 어느 자기계발서나 책에서도 나오는 이야 기이다. 다만 힙합은 그것을 음악을 통해 극적이고 아주 멋있게 표현했다. 힙합문 화는 태초에 미국 뉴욕의 브롱스, 할렘가의 길거리 문화로 탄생했다. 나처럼 힙합 문화를 동경하는 한국인이 있었을 것이고 미국에서 탄생한 문화를 한국에 퍼뜨린 사람이 있고 한국힙합이 생겨났다. 여기까진 좋다. 그런데 한국에서 힙합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국의 힙합문화를 그대로 따라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 대표해 언에 듀케이티드키드라는 사람을 꼽았다. 이 사람은 미국 래퍼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한다. 그 사람들이 술과 마약과 여자를 즐기면 자신도 그렇게 하고 그 사람들 이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내리면 자신도 바지를 내린다. 이렇게 그 문화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 사람은 가사에 술과 마약을 즐기고 자신이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묘사한다.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미국 본토 힙합문화에 있는 사람들의 가사를 따라하는 것뿐이다. 한국문화에서 그 가사처럼 진짜로 실행했다가는 방송에 출연도 못하고 교도소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흑인들을 따라 하기만 하는 이 사람은 내가 보기에 전혀 멋있지가 않다. 하지만 따라하는 건 본인 마음이지 내가 뭐라 할 수는 없는 노 릇이다. 그런데 언에듀는 그 문화를 따라하지만 자신이 쓴 가사처럼 실제 삶을 살 지도 않는다. 가사와 자신의 실제 삶 사이에 큰 괴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어설 픈 흉내에 불과하다.
나는 힙합의 자수성가하는 문화를 좋아하지만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내리는 것을 따라할 생각은 없다. 미국에서 탄생한 문화라고해서 그것을 그대로 우상화하고 따 라하는 것은 문화사대주의에 불과하다. 우리가 그들의 음악과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타 문화에 대한 우월함과 숭상이 아닌, 자신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자긍심 이 밑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에듀케이티드키드는 그 문화를 무비판적 으로 따라하고 우상화하고 베끼는 따라쟁이 불과하다. 하지만 사실은 실제로 자신 이 따라한 가사 대로 삶을 살지도 않기 때문에 말뿐인 가짜 따라쟁이에 불과하다.
비와이는 본토라는 노래에서 미국의 힙합본토문화를 동경하고 따라하던 자신의 모습에서 이제는 자신의 발이 디딘 곳을 본토로 재 정의하고 새로 거듭나기로 한 다. 비와이는 처음 가사에서 자신의 영웅들(스눕독, 닥터드레, 제이지, 카니예웨스 트 같은 사람일 것이다)이 있는 바다건너를 바라보며 자신의 색깔을 고민한다. 흑 인들이 걸치고 있던 보석들이 멋있어 보였고 그들의 문화를 동경했던 그는 결국 본 인은 검은색의 한국인이라고 지칭한다. 그는 보석을 두르고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내렸다. 하지만 비와이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국 본토의 문화를 베끼고 따라하던 어제에 서 새로운 내일로. 언에듀같은 사람은 흑인 래퍼를 연기하는 배우에 불과하다. 흑 인들이 써준 대본만을 외우는 드라마속의 연기자일 뿐이다. 누가 제일 흡사한지가 멋의 기준이며 트렌디함의 기준은 그들의 것과 가장 비슷할 때이다, 그들의 행동을 따라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가장 빨리 따라하는 사람이 가장 멋있는 사람이 된 다. 그들이 하면 그냥 죄다 멋있고 죄악까지 따라한다. 비와이는 이러한 래퍼들을 패배주의라고 비판한다. 비와이는 혀에 멜라닌 가득하다던 자신의 어린 날을 부끄럽게 여기고 노란피부의 흑인 소울이라 했던 자신을 사실은 가짜였다고 선언한다. 비와이는 이제부터 탈 본 토를 외친다, 미국본토 힙합문화에서 벗어나 즉, 탈 본토를 하고 본토는 내가 새로 이 다시 정의하기로 한다. 비와이는 다시 한 번 고민한다. 자신의 색이 무슨 색인지.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검 은머리의 한국인으로 지칭한다. 본인을 처음과 달리 검은색의 한국인이 아닌 검은 머리의 한국인으로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흑인을 동경하고 우상화했던 십대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립하고 새롭게 거듭난 것이다. 그는 이제 더 이 상 바다건너의 영웅들을 우상화하지 않고 경쟁하기로 하는 용기 있는 결정을 한다. 이제 그는 보석이 없이도 스스로 빛나며 더 이상 엉덩이 밑으로 바지를 내려 입지 도 않는다. 이 노래의 가사를 들을 때면 가사의 깊이에 감동이 밀려온다. 국힙에 있는 래퍼들이 반드시 스스로 사유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