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행복, 권태의 시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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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_range 30/09/2024 00:00 infosort label철학
행복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는 고통을 겪는다. 고통이 끝나면 그 후에 쾌락이 온다. 쾌락이 끝나면 권태가 찾아온다. (권태도 어쩌면 고통의 한 종류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당신이 열심히 힘든 일을 하고 쉬기 시작하는 순간, 가려운 곳을 참다가 긁기 시작한 순간, 배고픈 상태에서 맛있는 것을 먹는 순간 이런순간에는 행복(쾌락)이 찾아올 것이다. 고통이 끝나고 고통의 해방으로 쾌락이 찾아왔다. 그러니 어쩌면 행복하려면 고통을 추구해야 하는 것 같은 역설적인 상황에 마주친다.
그런데 이러한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고통의 해방 직후 행복이 있지만 곧 권태로움이 찾아온다. 고통과 권태 그 잠깐 사이에 행복(쾌락)이 있다. 막상 고통을 끝내고 행복이 찾아왔는데 얼마안가서 다시 권태로우니 어쩔까. 권태도 일종의 고통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을 것같다. –한마디로 힘들면 힘들다고 지랄, 심심하면 심심하다고 지랄–
그럼 권태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그 것은 바로 다시 고통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고통 후 다시 잠깐의 행복. 이렇게 고통과 권태 사이를 반복하는 시계추 같은 것이다. 이 말은 쇼펜하우어가 한 말이다. 나는 이런 쇼펜하우어의 말에 공감한다.
나는 올해(2024년) 휴학중이다. 휴학을 하고 백수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내가 이것저것 하는 건 많기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생이 학교를 안가니 규칙적으로 뭔가 해야할 일이 적고 시간이 많이 남는다. 이렇게 잉여로운 삶을 살다보니 너무 좋기도 하지만 권태로움이 찾아온다. 그래서 휴학기간에 내가 이 권태로움을 극복하기위해 운동과 알바같은 고통을 선택했다.
유튜브도 10시간 연속으로 보면 재미없어진다. 권태다. 그냥 보는 것보다 열심히 일하고 피로한 상태에서 집와서 씻고 치킨시켜놓고 유튜브 키는 그 순간 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극한알바를 마치고 사탕 하나 먹으며 밖으로 나오는 모습)
우리는 고통이 필요하다. 현대사회에 인간의 고통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벌기위한 노동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은 그래서 일해야 한다. 설령 그 일이 삽질에 불과 한 것이라도 말이다.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무엇인가 일을 하여 성취감을 느낄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고통의 결과로 성취감을 줄 수 있는 형태이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럼 인간에게 있어서 큰 고통이면서 또 동시에 그 고통 후에 큰 행복과 성취감을 주는 일은 무엇일까? 물론 아주 많을 것이다. 그 중 난이도 최상의 일이고 장장 20년에 걸쳐 해야하는 힘든 일이면서 인간에게 정말 큰 행복과 성취감을 주는 일이 있다. 바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들다. 특히 인간같은 포유류들은 새끼를 키우는데에 정말 많이 노력이 필요하다. 포유류는 대부분 영아기 때 부모의 보살핌이 없으면 자식이 얼마살지 못하고 죽는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정말 큰 고통이자 행복인 것이다. 이 것만큼 고통과 행복을 동시에 주는 것이 있을까?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생물학적 관점에서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는 중요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도 인간에게 행복을 주고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정말 중요한 행위인 것이다.
인간에게는 어쩌면 필연적으로 고통이 필요하다. 행복(쾌락)은 고통과 권태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위해선 역설적으로 고통을 쫓아야 한다. 행복을 위해 고통을 쫓아야 한다니 정말 인생자체가 고통일수도.. 쇼펜하우어의 생각에 일부 공감한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어느정도 성취감을 주는 고통을 찾고 조금씩의 행복을 찾는 것일까 생각해본다.